나의 직업이 60까지는 아니지만 이렇게 40대 초반의 나이에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가족들을 부양해야 할 기간이 많은데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심리적으로 받은 충격은 컸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고, 평균이상의 스펙을 가졌다고 생각했기에 주위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도 표현하기 어려운 심정이었습니다.
1998년 IMF당시에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국가적인 경제위기로 그 당시 내가 군대를 제대하고 아버지가 48살에 희망퇴직을 하셨던 기억이 나기에 현재 주변 또래들은 잘 다니는 상황에서 나만 이런 상황을 겪는 것인지 거시적으로 보이는 현상이 없었기에 혼란스러운 마음이었습니다.
나의 직업은 중소기업의 경영지원팀장으로 직원들의 입사부터 퇴사까지 관리하는 인사, 각종 잡무를 챙기는 총무의 역활을 주로 맡아왔습니다. 한 부서의 장으로서 중소기업이지만 나름 외부에서 보기에 나쁘지 않은 정도의 대우는 받고 있었으나 심리적으로는 출근할 때부터 불안감이 올 정도로 심약해진 상태였습니다.
과거의 업무였던 경영지원팀장의 일은 컴퓨터의 발전으로 회계부서의 팀장이 인사부서의 업무까지 총괄하는 형태로 변이되고 있었으며, 발전하는 IT기술의 발전으로 젊은 세대의 업무습득이 빨라진 관계로 나름 직무능력 관련 공부도 열심히 하였지만 상위회사나 안정된 분야로 가기 위해서는 노무사/변호사/회계사 등 전문자격증 또는 사장님 친인척이 아닌이상 버티기 전력 외에는 방법이 없기에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30대를 살아온 나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심리상태였습니다.
개구리가 뜨거운 물에 있을 때 아무 고통도 느끼지 못하다가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 상황이 눈뜨고 있으면서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자괴감이 밀려왔습니다. 대학생 시절에 컴퓨터 관련 발전 가능성을 보고 IT자격증도 미리 취득하고 인사 관련 부서역량도 키우고 나름 인사 관련 모임도 나가면서 세상과의 소통을 하며 지내 왔었는데 실제 외부의 변화는 내가 생각한 변화보다 빠르게 변해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일은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누가 이야기 했던가 2016년 12월 31일자로 퇴사일이 정해지고 퇴사 1개월 전부터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아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단 개인적으로 인터넷으로 취업 관련 학원정보를 알아보았습니다. 중소기업이다 보니 은행처럼 몇 년 치 퇴직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창업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기에 분연히 혼자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래서 대기업/은행/공무원을 지원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중소기업에서 임원도 되고 사장도 되겠다는 나의 꿈은 여기서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일 먼저 알아본 학원은 서울 당산동에 있는 현대직업전문학교의 용접기술 과정이었습니다. 이 과정을 선택한 이유는 300만원 이상 받을 수 있는 직업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의견으로만 결정한 단순한 결정이었습니다. 중년에 퇴직을 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큰 스트레스였고 어떤 판단에 결정을 내리기에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에는 집에 이야기를 못했기에 출근하는 것처럼 집을 나와야 했습니다.
도서관도 다니고, 드라마에서 보듯 정말 양복 입고 관악산에도 갔습니다. 물론 자주 가는 곳은 PC방이었습니다. 저녁에는 가까운 지인에게 진로 관련 고민도 이야기해보았으나 나처럼 대부분이 화이트칼라에 기술분야에 대해 아는 분이 없었기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지인분들이 있었기에 그 시간을 버티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경제지식 IMF에 대하여 -1997년 IMF는 왜 발생하게 되었을까? 사실 외화위기 직전에는 호황이었다고 할 정도로 은행 예금 이자도 굉장히 높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1996년부터 IMF 위기의 조짐이 보였다고 하는데, 1996년 경제성장률이 직전년도 9.6%에서 7.6%로 하향된 것이 그 시작이었고, 언론을 통해 경기가 침체될 것이라는 보도가 뒤이어 쏟아졌다고 합니다. 사실 그 시기에 7%정도의 경제성장률이면 심각할 정도의 수준이 아니고 평균을 웃도는 성장률이라고 하는데 언론에서 호들갑을 떤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경기침체라고 부채질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성장률 감소가 수출액 감소로 이어지고, 대외채무폭증과 맞물려 있었던 것이 큰 이유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기업과 정부는 구조개선의 노력의지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1997년 IMF 위기가 발생하게 된 것 입니다.당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한국 언론사들이 외환위기 진전까지 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안전하다는 식으로 선전을 했다고 이야기를 했다는 썰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사실 그 당시에는 IMF총재와 IMF측 인터뷰를 통해 그대로 보도한 것일 뿐 언론사들이 선동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 당시에 환율이 높았기 때문에 수출하기 좋지 않나? 하는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데 기업들이 도산하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수출하려고 해도 물건이 많지 않았으며그동안 쌓여온 많은 외채로 인하여 달러가 필요했기 때문에 큰 위기가 찾아오게 된 것 입니다. 즉, 팔 수 있는 물건이 없는데 환율이 높아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이죠. IMF 위기에 직면하기 전 1996년까지는 대한민국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고 불리던 시절을 누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1996년의 무역 적자가 230억에 달했으며외채는 천억 달러를 뛰어 넘는 등 이미 대내외적으로 장기적인 문제점이 내재되어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러한 위기가 발생 될 것을 예측한 전문가들이 있는데 이를 막지 못해서 발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휴유증은 지독했다 경제 위기 이전의 성장 이면에서 볼 수 있듯이 대한민국은 경제위기가 닥친 후 몇년동안 은 빠른 속도로 벼랑 끝으로 추락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는 이 위기를 극복하고 단기간에 회복하기는 했지만 경제적, 사회적으로 막대한 피해와 후유증을 남겼으며 고용불안, 청년실업, 양극화 등의 문제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사실 그전에도 이러한 위기는 있었으나 드러나는 경우가 적었기 때문에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IMF 이후에는 이러한 문제들이 현실로 나타났고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자살률이 급증하고 가정의 이혼과 붕괴 등이 이어지며 암울한 그림자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1997년에 발생한 IMF 위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지금 코로나 시대랑 비교하면 오히려 IMF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결국은 IMF 시기도 지나갔듯이 코로나 시대도 언젠간 끝이 날 것이라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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